서울의 오래된 골목길.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낡은 건물들이 하나둘씩 철거되는 곳.
그 골목 끝자락에 아직도 남아 있는 한 작은 가게가 있다.
이곳은 1950년대부터 운영된 한자 필방(筆房)으로, 간판에는 퇴색한 글씨로 **‘명문당(明文堂)’**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 가게에서 붓을 사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곳은 ‘이상한 기운이 흐르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이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나오지 못할 뻔했다.
1. 낡은 가게
나는 오래된 문화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서울의 마지막 필방 중 하나인 명문당을 취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문을 열자, 내부는 먼지가 가득했고, 벽에는 빛바랜 한자가 적힌 종이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
그리고 안쪽에는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어서 오시오.”
노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나는 인사를 건네고 촬영을 시작하려 했지만,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가게 한쪽 기둥에, 엉뚱한 글귀가 적힌 붉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나는 순간 당황했다.
‘입춘대길’은 봄을 맞아 집에 붙이는 글귀인데…
가게 기둥에 이런 글귀를 붙인다고?
나는 장난삼아 노인에게 물었다.
“사장님, 보통 가게 기둥에는 물건값을 적잖아요. 여기에 입춘대길이라니, 좀 이상하네요.”
노인은 손을 떨며 말했다.
“…그거, 떼지 마시오.”
2. 금기(禁忌)
노인은 입춘대길을 붙인 이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분명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기둥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종이를 손끝으로 만지는 순간…
쾅!
갑자기 가게 문이 닫히며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노인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손대지 말라고 했잖소!”
그 순간, 내 귓가에서 낯선 속삭임이 들려왔다.
“…입춘대길…”
나는 소름이 돋아 황급히 손을 뗐다.
3. 사라진 글씨
다음 날, 나는 다시 가게를 찾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입춘대길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노인을 불렀다.
“사장님, 기둥에 있던 글씨가 없네요?”
노인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다급하게 중얼거렸다.
“이제 끝났어… 이제 다 끝났어…”
나는 당황했다.
“아니, 종이가 떨어진 거 아닐까요?”
그때였다.
문 밖에서… 누군가가 가게를 바라보고 있었다.
4. 거꾸로 된 얼굴
나는 문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느낌.
그 순간, 내 뒤쪽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보고 나는 숨이 멎을 뻔했다.
거울 속에는…
거꾸로 된 얼굴이 있었다.
입과 눈이 뒤집힌 얼굴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입이 천천히 열리며 말했다.
“……입춘대길……”
5. 저주받은 가게
나는 공포에 휩싸여 가게 안으로 뛰어들었다.
“사장님! 대체 이게 뭐죠?”
노인은 손을 떨며 말했다.
“그 종이는… 이 가게를 막아주는 마지막 방벽이었소.”
나는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무슨 뜻이죠?”
노인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여긴 원래 필방이 아니었어. 100년 전, 이곳은… 관(棺)을 파는 곳이었지.”
나는 충격을 받았다.
“관이요…?”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기둥을 가리켰다.
“이 기둥은 원래… 죽은 자들의 이름을 적던 곳이었어.”
6.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노인은 말했다.
오래전, 이 가게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관을 주문한 사람들은 멀쩡히 살아 있었지만, 며칠 후 실종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기둥에 적혀 있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이 가게를 버리고 떠났고,
후에 필방으로 개조되었지만, 그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 주인들은 기둥에 입춘대길을 붙였다.
“이게… 저주를 막아주는 유일한 방법이었소.”
하지만 이제… 종이는 사라졌다.
7. 다시 나타난 얼굴
나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나를 따라왔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입춘대길…”
거울을 보았다.
그곳에는…
거꾸로 된 내 얼굴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 입이 움직이며 말했다.
“……네 이름은…… 기둥에 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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