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 이야기

거겨 뒷다리도 모른다

빨강 망토 파란 망토 2025. 2. 26.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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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에 외부와 단절된 작은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의 이름은 거겨골.
이곳 사람들은 모두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아니, 글을 모르려 했다.
마을에서는 글을 배우는 것이 금기였고, 심지어 마을을 찾는 외지인들마저도 문자를 입에 담는 것이 금지되었다.

거겨골에는 전해 내려오는 기묘한 전설이 있었다.
이 마을에서 글을 배우면… 반드시 무언가가 찾아온다고 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무엇인지, 왜 그런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두려움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1. 이방인의 도착

어느 날, 외지에서 한 남자가 마을을 찾아왔다.
이름은 서준호. 그는 언어학자였고, 사라진 방언과 문화를 연구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 ‘거겨골’에 대해 듣게 되었다.

"이상한 마을이 있더라고. 거기선 글을 배우면 안 된다네."
"왜?"
"몰라. 근데 진짜 글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준호는 그 말에 흥미를 느꼈다.
문자가 없는 사회라니. 그것은 언어학적으로 대단한 연구 자료가 될 터였다.
그렇게 그는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거겨골을 향했다.

마을에 도착하자 주민들은 낯선 사람을 경계했다.
이장은 준호를 보며 불편한 듯 말했다.

“여긴 뭣하러 왔소?”

준호는 일부러 자신이 언어학자라는 사실을 숨겼다.
대신 여행 중이라고 둘러댔다.

“그냥 쉬었다 가려고요.”

이장은 준호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경고하는데, 여기선 이상한 짓 하지 마시오.”


2. 무너진 금기

준호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정말로 글을 모르는 걸까?
아니, 글을 아예 알지 않으려는 것일까?

그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이곳 사람들은 글자의 개념조차 모르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글자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준호는 몰래 작은 수첩을 꺼내 한 글자를 적어 보았다.

‘거’

그 순간, 방 안이 싸늘해졌다.
바람이 한 점 없었는데도 촛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준호는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글자를 적었다.

‘겨’

그때였다.

‘……거……겨……’

어디선가 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호는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귀를 기울였다.

‘……거……겨……’

이상했다. 목소리는 분명 가까웠다.
마치… 방 안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그는 급히 종이를 찢어 버리고, 수첩을 덮었다.
그 순간, 목소리가 사라졌다.


3. 검은 형체

그날 밤, 준호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자신이 마을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주변은 검은 안개로 가득했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사람 같았다. 하지만… 얼굴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얼굴이 번지고 있었다.

그것은 입을 열었다.

‘……거…겨…’

준호는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이 손을 뻗는 순간, 준호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4. 사라진 아이들

다음 날 아침, 마을은 아수라장이었다.

“아이가 사라졌어!”

마을에서 두 명의 아이가 실종된 것이었다.
부모들은 울부짖으며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준호는 전율이 흘렀다.
어젯밤 자신이 글자를 적었을 때, 분명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혹시 그 일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혹시 이런 일이 전에 있었나요?”

그러자 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옛날에도… 있긴 했지.”

준호는 숨을 죽였다.

“그때도… 누군가가 글자를 적었을 때였어.”


5. 마을의 저주

준호는 노인에게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 마을은 원래 글을 알던 곳이었다.
그러나 몇백 년 전, 마을에서 한 문자가 새겨진 돌비석이 발견되었다.
그 돌을 읽은 사람들은 하나둘씩 이상한 형체로 변해갔다.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고, 결국 돌을 깊이 묻어버렸다.
그리고 문자를 배우는 행위를 완전히 금지했다.

그때부터 마을에서는 누구도 글을 배우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글자를 적을 때…

그것이 다시 나타났다.


6. 되살아난 공포

그날 밤, 준호는 다시 그 꿈을 꾸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그 형체는 더 이상 안개 속에 있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

그것이 입을 열었다.

‘……거…겨…’

준호는 도망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이며 공중에 글자를 새겼다.

‘거’

순간, 그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단어는…

‘……겨…’


7. 마지막 기록

다음 날 아침, 준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머물던 방에 들어갔다.

그가 남긴 것은 오직 한 장의 종이뿐이었다.
거기에는 딱 두 글자만이 적혀 있었다.

‘거’
‘겨’

그리고 종이 아래에는,
어디선가 흐릿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거…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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